화-토 : 11:00-6.30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레디메이드(Ready-Made)’는 예술사적으로 단순한 기성품의 재배치가 아니라, 예술의 제도적·관념적 틀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기념비적 성취로 평가된다. 뒤샹이 제시한 ‘경계 허물기’의 정신은 이후 팝아트, 개념미술, 그리고 포스트모던 미학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으며, 예술이 소비문화나 산업구조와 어떻게 결합·충돌·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나무 스툴에 자전거 바퀴를 수직으로 꽂고, 남성용 소변기에 ‘R. Mutt’ 라는 서명을 남긴 지도 어느덧 100여 년을 넘어섰다. 이제는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이 초단위로 생성·노출하는 방대한 시각 콘텐츠가 우리의 디지털 환경을 지배하며, 다양한 이미지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 생성, 확산되는 밈(meme) 문화, AI 기반 생성 아트, NFT(Non-Fungible Token) 형태의 디지털 작품 등에서도 ‘레디메이드’ 개념이 여전히 재해석되며, 새로운 기성품과 창작의 경계를 가늠하는 주요 이정표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뒤샹의 실험적 태도는 예술의 본질적 의미와 가치를 끊임없이 재정립하는 근간이 되며, 오늘날의 예술이 지속적으로 자기 혁신을 모색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 <READY-MADE: On the Borderline>에 참여하는 두 작가는 각각 독자적인 접근을 통해 이러한 미학적·사회학적 담론을 이어받는다. 선호탄은 자본주의 체계에서 대량 생산된 기성품들을 콜라주 기법으로 재배열함으로써, 개인의 소비 행위가 어떻게 존재의 욕구, 정체성, 그리고 서사를 구성하는지를 탐구한다. 이는 앤디 워홀이나 제프 쿤스 식의 ‘소비 이미지’ 활용을 넘어, 소비 행위 자체에 내재한 철학적 의미를 반추하는 예술철학적 접근이다. 반면 조지훈은 소비문화가 형성하는 사회·개인적 의미에 주목하며, 그 양면성을 작품 속에서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는 환경 파괴와 불평등 같은 부정적 영향부터, 정체성 형성과 사회적 지위처럼 소비가 지닌 긍정적 영향까지 다각적으로 탐구한다. 특히 그는 유리를 활용한 작업에서 매혹적인 시각적 외피와 그 이면의 공허함을 은유하기도 하지만, 이외에도 여러 재료와 매체를 결합하여 소비문화가 지닌 복합적인 의미를 다층적으로 탐구한다. 이러한 접근은 관객에게 일상적인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며, 그 안에 잠재된 다양한 문제의식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유도한다. 또한 그는 현재 런던 RCA의 MA Sculpture 과정에서 학업과 작업을 병행하며, 예술이 산업·소비구조와 만나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과 이를 기반한 동시대 미술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두 작가의 실천은 단순히 대량생산의 결과물을 예술의 장으로 가져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산업과 예술이 어떻게 상호 교차하며 확장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 비평’이라 할 수 있다. 레디메이드가 과거 예술 사조를 깨트린 선구적인 관점이었다면, 지금의 예술가는 그 원리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 환경문제, 사회적 불평등 등 복합적 구조 속에서 새로운 통찰을 요구받는다. 결국 <READY-MADE: On the Borderline>은 작가들이 콜라주와 입체 작업을 매개로, 산업과 예술, 창작과 소비에 얽혀 있는 관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보는 장이자, 현대 미술이 지속적으로 어떤 변혁적 가능성과 역할을 담보할 수 있는지 숙고하게 만드는 중요한 탐색의 자리다.
- C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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