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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ef Encounter

  • 2025. 2. 14 - 3. 15
  • WWNN
  •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5길 20

화-일 : 11:00-18:00

《Brief Encounter》는 순간과 지속을 동시에 다룬다. 이 상반된 시간 감각은 어떤 사건과 감정, 신체나 사물에 가해진 접촉 속에서 다른 시간성을 발생시킨다. 전시 제목처럼, 짧은 만남에 부여된 시간은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다. 그러나 이 짧은 만남 속에 어떤 접촉이나 사건이 발생했다면, 그 시간은 잔상처럼 끝나지 않고 지속된다. 일시적인 접촉, 미묘한 떨림, 출처를 알 수 없는 흥분 혹은 수치심, 미세한 자극을 통해 사건이 일어난다. 일종의 마찰로서 접촉은 의식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감정을 신체로 감지한다. 어떤 짧은 만남은 지속적인 관계나 일상을 구성하는 물리적 시간의 축적을 능가하는 강도 높은 인상, 전율, 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전시는 이와 같은 사건과 신체의 접촉 상황으로 강예빈, 엘리노 하이네스, 정영호, 함성주의 작업을 펼쳐 보인다. 네 작가의 작업은 각기 다른 매체로 동시대의 단편을 불러와 일시적인 관계망을 형성하며, 그로부터 예기치 못한 이야기가 불시에 발생한다. 전시가 열리는 동안 짧은 만남들이 무수히 일어난다. 작업과 작업이, 사람과 사물이, 신체가 다른 신체를,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위기나 힘이 우연적이고 비상한 방식으로 조우하거나 접촉하며 사건이 벌어진다.《 Brief Encounter》는 유한한 시간성에 놓인 전시가 매개하는 짧지만 영원한 만남을 은유한다. 일시적인 사건으로서의 접촉, 순간을 능가하는 지속, 나아가 경이의 가능성을 찾는다.

강예빈은 사물과 이미지 사이에 놓인 관계성을 회화로 탐구한다. 그는 작업 방식으로 '사물'과 '이미지'의 선후 관계를 뒤바꾸는 시도를 병행하는데, 가령 한 사물을 떠올리기 위해 어떤 이미지를 불러오거나 반대로, 이미지를 생각하기 위해 어떤 사물의 형상을 가져오곤 한다. 사물과 이미지의 결합이 하나의 완성된 작업으로 놓일 때 이는 사건이자 장면이 된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네 점의 작업은 모두 이미지화된 사물들로, 불특정한 맥락에 놓여 상상을 자극하는 장면으로 작동한다. 회화 프레임 속 가두어진 각 장면은 어떤 사건을 짐작하게 하는 열린 단서가 된다.

정영호는 사진으로 기술적 경험과 육안을 통한 실제적 인식을 다룬다. 그는 디지털 스크린을 경유한 이미지를 재촬영하는데, 촬영의 대상은 타국의 뉴스와 같은 보도자료부터 AI가 생성하는 탈진실의 이미지까지 광범위한 환영을 교차시킨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네 점의 작업은 네트워크를 통해 목격한 증발한 얼굴들, AI 생성 이미지가 육화한 신체의 오류를 환원한다. 흩어진 사진들은 미묘한 아름다움, 낯선 익숙함, 자연스러운 생경함과 같이 양가적인 감각의 조우를 이끌어낸다.

함성주는 인터넷에서 무작위로 수집한 이미지를 캔버스로 옮긴다. 스크린 너머의 임의적인 이미지를 현실의 알레고리로 삼아 반복해서 그린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와 변형, 자의적인 해석을 동반한 그리가 원본이 가진 다차원의 해석을 일부 참조하고 탈락시킨다.

시침과 분침이 일직선으로 포개어진 순간, 몸의 중심을 한쪽으로 기울게 꼰 다리, 자동차 보닛에 장난스레 그려진 고양이 낙서와 같은 순간적이고 단편적 이미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불온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엘리노 하이네스의 작업은 접촉과 만남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보여준다. 작가는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 세라믹과 살성과 액체성을 상징하는 모유, 타액, 각질, 머리카락 등의 재료를 혼합한 다중매체 작업을 선보여 왔다. 가변적이고 비결정적인 재료의 특성은 명료하게 정의할 수 없는 조각의 유기체적 형상을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은 신체의 내밀한 움직임과 마찰을 연상시키는 3D 애니메이션 영상이다. 이처럼 엘리노 하이네스의 작업은 피부에 닿아 느껴지는 감각을 배가한다.

_공동 기획

이지언, 이상엽, 유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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